<지리산 포럼 2025> ‘변화를 만드는 지도 발표회’ 참석 후기

지난 9월 27일 토요일에 <지리산 포럼>*에 테오즈와 제로섬이 다녀왔습니다. 저희는 공익연구센터 블루닷이 주관한 ‘변화를 만드는 지도 발표회’ 세션에 초대받아서 15분 정도 발표를 했어요. 2020년의 ‘크롤 앤 스티치(스토킹 입법 프로젝트)’ 때부터 저희는 꾸준히 데이터 기반의 캠페인을 모색해왔는데, 방법적으로 거의 제로베이스에 시작한 저희를 암암리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이번에도 저희 ‘K-다크맵 투어’( LINK)를 좋게보시고 귀한 자리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 행사 정보는 여기에! https://jirisaneum.org/jirisanforum_about

 

지리산 포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요?

지리산 포럼은 다채로운 인권운동의 주제를 바탕으로 프리토크와 토론, 워크샵, 세미나 등의 형태로 구성되는 네트워킹 행사로 벌써 올해로 11번째를 맞이했습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일대에서 도서관, 카페, 회관, 사무실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다양한 이벤트가 있어, 마치 비영리 소셜 무브먼트 락페스티벌을 보는듯 하였습니다. 여러번 참석한 사람들도 있고 저희처럼 처음 온 분들도 많았어요.

 

 

연차를 모두 소진한 직장인이다보니 저희는 하루밖에 못있었지만 단시간에, 그래도 계속 해볼만 하다는 긍정적 에너지를 흡수하고 공부해야 할 숙제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내년에는 휴가겸 한 3일은 잡고 가면 좋겠습니다.

 

‘지도’란 공간에 불투명한 관점을 부여하는 일!

-지도는 어떻게 사회문제를 보여주는가?┃ 당근 (공익연구센터 블루닷)

-도심 하천 밀양강 오리류 분포와 개체수 지도 ┃ 버찌 (밀양생태문화연구회)

-춘천의 리어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기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K다크맵 투어_한국의 길거리 괴롭힘 지도┃ 테오즈, 제로섬 (셰도우 핀즈)

-매핑교육과 지역주민의 성장과 변화┃ 초원 (밀양소통협력센터)

 

*모든 발표자료는 다음의 구글 드라이브 링크에서 다운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저희가 K-다크맵 투어를 시작하게된 중요한 계기중 하나는 제로섬님이 남자 동료와 평소 길거리를 평범하게 걸으면서 겪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같은 나라이고 도시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딴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지 충격적인 격차를 인지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여성에게 일어난 불쾌한 길거리 괴롭힘의 경험을 남성은 전혀 혹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겪고 있었어요. 글을 쓰고 있는 저만해도 그 경험들 때문에 가기 싫어지는 동네가 있고 이름을 들으면 반자동으로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지역이 있습니다. 어떤 공간에 대한 안좋은 기억때문에 도시내 이동의 반경이 한없이 작아지는 여성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현대의 도시 공간은 완전히 공평하지도, 투명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더 폭염 무더위에 취약한가?는 어떤 성별에게 특정 길거리가 더 위험한가? 처럼 다분히 사회적인 질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에어컨을 마음껏 틀거나 시원하게 바람잘 통하는 집에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블루닷 당근님의 발표 내용을 보면서 도시정비 상태와 냉방기기 고사용이 가능한 자산의 차이가 곧 폭염에 대한 체감력 차이로 이어지는 것을 선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밀양생태문화연구회의 ‘밀양강 오리류의 분포도와 개체수’ 지도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생태에 대한 리포팅이 정책적 의사결정을 어떻게 바꾸고 영향 주는지에 대한 시도였습니다.

삼문동 일대 다리 증축이라는 인간의 잉여적 편리 추구와 부딪치고 있는, 조류 서식지 보호의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후자에 힘을 실어주려면 우선 그곳에 어떤 오리들이 실제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부터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공존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도 방법적으로 가능해보였습니다. 개발자나 엔지니어가 아닌 회원분들이 수기로 기록하고 사진도 찍고 구글 마이맵스로 레이어링하는 간편한 방법을 쓰신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빠띠의 나기님이 발표하신 ‘춘천의 리어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가 만든 데이터와 지도는 한국에서 최초로 이뤄진 폐지수집 노인에 대한 리서치였다고 합니다. 도시 어느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노인들의 모습임에도 2022년에서야 사회적 관심을 받게된 것과 정성조사만이 접근할 수 있는 실제 업계의 이해관계 충돌이나 위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시는 디테일한 상황들이 흥미로웠습니다.

 

 

블루닷스쿨 X 밀양은 대학 공동 기획의 ‘변화를 만드는 지도학과’에서는 앞의 밀양생태문화연구회 외에도, ‘교통팀 <하버>’ 와 ‘복지팀 <복분자>’가 발표자로 자리해주셨습니다. 하버팀은 직접 밀양 지역 버스를 모니터링 관찰자의 시선으로 탑승해서, UX 정보설계가 잘못되어 있는 등의 대중 교통 이용시 어려움을 세세하게 기록해 지도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복분자팀은 보행약자의 시선으로 제약이 많은 이동가능 범위를 가늠할 수 있는 경사로 위주의 지도를 제작하셨어요. 밀양시 중앙로에서 보행약자가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 출입문은 어디인지, 그렇지 못한 곳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문제를 지도로 보여주고 지역사회에 개선점도 제안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시민운동의 문제를 더 구체화할 수 있을까?

 

더위에 대한 취약도 지표를 격자형 인구통계로 구현하신 사례를 보면서, 저희도 보다 다양한 통계와 시각화로 여성안전의 지역격차를 시각화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로서 사법적/행정적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돈은 얼마나 드는지, 어떤 유무형의 지원이 필요한지, 기간은 얼마나 걸릴지, 그런 사회적 비용의 견적을 내보고 싶었습니다.

시민운동의 다양한 섹터에 있는 개인과 그룹들은 상당히 어렵고 골치 아픈 사회 문제를 다룹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도 쉽게 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 손에 잡히는 개선과 진보가 이 씬의 많은 사람들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엔지니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들과의 협업이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수는 없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의 형체를 구체화하는 일에는 아주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숫자와 데이터는 사람의 막연하고 동화적인 편견을 깨뜨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의 해상도를 높인다고 생각합니다. 특권을 가졌거나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불편함도 없는 길, 거리, 동네, 지역, 도시, 나라이지만 그곳에는 가지각색 불평등 문제를 겪는 사람들과 생물들의 생의 문제가 걸려있습니다. 자신은 되어본적없는 약한 타자의 시선으로 평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지역의 지도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사회가 해야할 일도 좀더 비획일적이고 구체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희는 지도제작이라는 방법은 시민운동에서 앞으로도 계속 해볼만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