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S사 전 대표이사 A의 손을 들어준 박창희 판사는 대체 무엇을 가짜라고 느끼는가?

스타트업 S사 전 대표이사 A의 손을 들어준 박창희 판사는 대체 무엇을 가짜라고 느끼는가?

 

지난 4월 21일, 서울동부지법의 박창희 판사는 스타트업 S사 전 대표이사 A에게 전 직원이자 직장내괴롭힘/성희롱 피해자인 B가 벌금 2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1] 자신이 당한 피해경험을 공론화한 피해자 B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죄를 묻고 유죄를 내린 것이다. 무엇이 ‘허위’이고 ‘가짜’라는 것인지, 2년동안 고통받은 피해자에게 어떤 추가적 ‘벌’을 사법부가 내린 것인지, 작금의 암담한 상황과 씁쓸하게 잔존하고 있는 의문들 때문에 방청연대를 다녔던 사람들 중 하나로서, 셰도우 핀즈는 이 성명의 발기인을 자처한다. 이 성명에는, 십대여성인권센터 IT지원단 women do IT,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청년유니온, 테크페미,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연명했다.     

 

<1> 룸싸롱과 가라오케, 접대부와 도우미 

 

박창희 판사와 스타트업 S사 현 직원들, 전 대표이사 A는 룸싸롱과 가라오케를 칼로 무자르듯 딱 떨어지는 별개의 공간으로 감별하고자 했고, 룸싸롱이 아니고 가라오케니까 문제없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무시하고 있는 현실, 한국의 유흥업소 문화를 향유한 경험이 전무한 여성들이야말로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현실이 두가지 있다. 

첫째, 한국이라는 나라는 성매매가 공식적으로는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업종 단속에 민관/좌우/상하할 것없이 관대한 풍토가 만연해있으며, 단속을 피해 신종 성매매들이 생겨나면서 공간의 성격마저 유동적으로 바뀐다. 

가라오케의 사전적 의미는 ‘노래방’ 정도로 순화할 수 있는데, 이런 곳들도 추가요금을 내면 순식간에 도우미와 성매매가 가능한 공간으로 변신하는 사례가 기사화된 적이 있다. [2] 이는 같은 건물 호텔로 이동해 접객부와의 성매매로 영업을 잇고있는 룸싸롱들과 동일한 수법이다. 해당 업태들의 영역은 엄밀하게 구분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판단은 합리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2014년에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성공한 스타트업 우버(UBER) CEO 트래비스 칼라닉이 한국의 룸싸롱을 이용했다는 한 기사[3] 에서는 헤드라인에서만 ‘룸싸롱’이라는 지칭을 쓰지, 실제 기사내용에서는 일관적으로 ‘가라오케’라고 2중 지칭을 쓰고 있는 것만 봐도, ‘가라오케’의 실제 상용화된 의미들 중에 한가지가 ‘룸싸롱’이 충분히 될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 

 

둘째, 룸싸롱의 접객부나 가라오케 도우미나 모두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직군으로, 이들과의 동석을 큰 문제시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평소의 여성들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가 차별적일 확률이 크다.

왜 술을 마실때, 노래를 부를 때,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옆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가? 술마시고 노래부르고 싶으면 다른 공간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는가? 만 따져봐도 알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정도를 세분화해서 혐의의 무게를 저울질 하는 게 아니고, 왜 한 회사의 대표이사 자리에 있는 남성이 여성도우미가 나오는 가라오케에 여직원들을 데려가서 옆자리에 앉혔느냐이다. 그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원한 일이 아니었다. 

평소 가라오케를 종종간다고 법정에서 유일하게 말한 사람은 전 대표이사 A이고, 그 동석은 A의 뜻이 우선시된 일이었다. 재판부가 따져물어야 할 것은 가라오케냐 룸싸롱이냐가 아니라, A가 평소에 여자란 남자가 술마시고 노래부를 때 옆에서 흥을 돋우는 일을 해도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성차별적인 사람이었는지, 심지어 그 문화 소비를 같은 회사 부하 여직원이 따라해야 했을때의 수치심이나 불편함이 있을거라 생각을 해본적은 없는지였다. 여성인 증인 1은 가라오케 여성 도우미와의 동석 경험을 법정에서 인정하며, ‘대화’만 나눴다고 했는데 그 대화가 과연 스타트업 S사 업무와 대단히 관계있거나 자발적인 친목을 위한 것이었겠는가? 직원들을 가라오케에 데리고 온 A를 위해 분위기를 적당히 맞춰주기 위한 의미없는 대화였다는 생각을 왜 재판부는 하지 못했는가.   

 

<2> 세 여성의 일

 

 

피해자 B, 증인 1, 가라오케 도우미 모두 일하는 여성이었다. 스타트업 S사 전 대표이사 A는 그들에게 ‘보스’ 혹은 ‘손님’혹은 ‘직장내괴롭힘의 가해자’이기도 했다. 이 3명중 1명인 B만이 그것을 세상밖에 용기있게 끌어냈다고 해서 다른 두 여성에 대한 A의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증인 1은 업무 슬럼프와 관련되서 눈물을 흘리며 괴로움을 호소한 적이 있다고 법정에서 인정했다. 또한 B가 크게 혼난적이 있음을 들어서 알고있다고도 했다. 또한 전대표 A의 반응에 회사 직원 모두가 민감해야한다고 평소 생각한 적이 있음을 카카오톡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세가지만 종합해봐도 스타트업 S사는 규모는 작지만 업무강도가 세고, 또 대표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피해자 B는 A가 (비록 법정에서 사실을 확인해줄 증인은 찾지 못했으나), 소주3병을 마신 직원에게 술을 강권했고 룸싸롱에서 유흥접대부 여성을 동석시켰음을 SNS로 공론화한 바 있다. 가라오케의 도우미 여성은 A의 말에 따르면 노래방 기기를 설치하고 잠시 A의 옆에 앉았다고 하는데, 노래방 기기 설치 기사를 그 누구도 ‘도우미’라고 부르지 않는다. ‘가라오케/노래방 도우미’의 메인 업무는 그게 아니라 손님들과 섞여 흥을 돋구고 같이 노래하는 일이다. 노래방의 사장인 어떤 여성이 기계에 뭔가 문제가 생겨 잠시 설치 후 옆에 앉았다면 더 합리적이었겠으나, ‘도우미’라고 부르는 여성이 설치만 하고 잠시 앉았다 나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A가 도우미를 부르는 것에 대한 추가 요금을 냈거나, 도우미 서비스가 포함된 가격을 지불했다면, 그 요금에 맞는 업무를 하고 나갔으리라는 추론이 조금 더 합리적이다. 이 사건을 따라가는 데 균형성을 갖추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어색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A는 부하 여직원에게 매우 가혹했으며, 자신이 컨트롤 하기 어려울 것 같은 B같은 직원은 급작스럽게 퇴사에 대한 압박감을 조성하고, 회식자리에서는 여성 도우미가 자신의 흥을 돋궈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을 확률이 높다.  

 

<3> 권력과 창의성의 관계

 

스타트업 S사는 현재 ‘잡플래닛’ 같은 회사 블라인드 평가 사이트에서 그 이름을 찾을 수 없지만, ‘R’이라는 투자받은 회사의 평가페이지에 전직원들의 온갖 괴롭힘 경험담이 올라오고 있는 상태이다. 스타트업 S사 갑질로만 구글에서 검색을 해도 B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익명 제보자들이 험악했던 사내 분위기에 대해서 증언을 쏟아내왔다. A는 오직 B 한사람에게만 직장내괴롭힘을 행한 것이 아니라, 그간 퇴사한 수많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폭압적인 리더십으로 일관해온 사람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성공한 스타트업’이라는 허울은 창의성과 자유라는 미명 아래, A의 가해의 연대기를 덮어버렸다. 스타트업 S사는 업계의 알만한 사람들은 절대로 가지 않을 것이지만, 여전히 그 성공 신화는 건재하며 곳곳에서 그 활발한 활동마저 볼 수 있으므로 B를 포함한 많은 제보자들의 작은 목소리는 유의미한 타격을 준 적이 없다. 자신들의 전 대표가 일으킨 문제중에서 일부를 도려내서 끝까지 내부고발자에게 200만원이라는 벌금을 받아내는데 일조한 전 직원들 중 하나인 증인 2는, 또다른 퇴사자 P가 퇴사한 이유가 거부하기 어려운 술자리와 유흥접객원이 있는 술자리 가는 문제 이 2가지였다는걸 나중에 회사밖에서 만나서 직접 들어 그제야 알았다고 한다. 또한 술자리를 거부한 유일한 직원 2명이 자신과 남직원 S였다고 한다. 남성이고, 직급이 높은 사람들만 거부가능했던 그 술자리를 끼고 돌아가는 회사에서 어떤 민주적인 논의가 원할하게 이뤄지고 창조성이 빛을 낼 수 있을지 상상하기 매우 어렵다. 특히 B는 비록 내부고발자가 되긴 했으나, 유튜브와의 협업을 성사시킨 유능한 재원이었다. 창조성은 대체불가능하고 보기드문 개인들의 생각과 시야, 자유로운 의견 교환에서 나오는것 아니었던가? 그 직원의 존재가 지워진 회사, 전 대표와 조직의 권력유지에 순응하고자 하는 말밖에 못하는 직원만 잔뜩 남은 회사가 앞으로 어떤 창의적인 길을 낼지도 상상하기 매우 어렵다.    

 

<4> 한국 사법부의 반복적 무능 

 

이 법률 소송은 피해자 B가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당한 직장내 괴롭힘과 성희롱 피해 경험은 제대로 법적 절차를 밟지도 못했으며, B는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고 공론화를 시작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A는 법을 기만적인 방식으로 필요로 했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문제 많은 회사의 대표였던 A가 긴급하게 사과하고 몇몇 내용을 시인하면서도 부득이 법적 소송을 거쳐, 부분적으로나마 자신의 혐의를 지우려했던 것은 자신의 명예가 앞으로의 동종/유사 업계에서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재기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수많은 젠더폭력 가해자들이 공론화한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 쓰는 수법과 매우 닮아있는 부분이다. 한국의 사법부는 왜 이 점, 이 맥락을 계속 놓치고 있는가? 박창희 판사는 올해 1월 17일, 같은 가해자로부터 의료수술 중 반복적으로 일어난 성추행에 대해서는 불인정하고 술자리에서의 언어적 성희롱은 인정했다.[4] 팔꿈치를 접촉한 성추행이 우연적인 신체접촉이라고 본 것이다. 여성에 대한 가해자들의 인식 수준, 두 사건 사이의 맥락을 보지 못하니 ‘고의성’이 없었다고 본 것이다. 평소 가해자가 어떤 언행을 일삼는지와 의도적인 팔꿈치 접촉 사이의 연결 고리를 전혀 만들지 못하고 지엽적으로 판결했다. 전신을 뒤덮는 수술복을 입은 상태에서 얼마 노출되지 않은 부위중 하나가 팔인데 그 부분을 접촉하려 한게 어떻게 우연적일 수 있을지 이것 하나만 집중했어도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스타트업 S사 사건 역시 가라오케냐 룸싸롱이냐 좁게 묻지 말고, 문제의 핵심 축을 권력이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 어떤 강압이 있었고, 그것을 SNS로나마 공론화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 공론화가 가지는 공공의 이익성만 잘 판단했다하더라도, 명예훼손 건 처럼 기각될 수 있었는데 2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의 벌금이 선고되버렸다. 욕설한마디 섞이지 않은 B의 글이 200만원이라는 벌을 받아야하는 데 동의하기 어려우며, 이런식으로 판사 개개인들마다 공론화 성격의 글을 쓴 피해자들에게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한국 사법부의 현실이 크나큰 유감을 표한다.    

 


 

[1]

<참조자료: 셰도우 핀즈 방청 모니터링 문서>

스타트업 S사 (전)대표 직장내괴롭힘+성희롱 사건(1) http://shadowpins.dothome.co.kr/?p=1027
스타트업 S사 (전)대표 직장내괴롭힘+성희롱 사건(2) http://shadowpins.dothome.co.kr/?p=1047

[2]

http://www.segye.com/newsView/20190410510866?OutUrl=naver

[3]

https://www.ajunews.com/view/20170326151118026

[4]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5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