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 뒤집기 방청기

_테오즈

 

 

1. 일시: 2016.04.28 15시

2. 장소: 이화여대 모의법정

3. 주관: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한국성폭력상담소/이화여대젠더법학연구소

 

[1]

안녕하세요, Y님에 이어 셰도우 핀즈에서 두번째로 인사드리는 Teoz(테오즈)입니다. 5월부터 저는 Y님과 운영을 분담해 카드뉴스 등의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맡고, 여성주의 법학 논문과 단행본, 국내외 액티비즘을 리뷰할 예정입니다.???

 

[2]

모의법정은 ‘대법원 2014도9288’판결을 바탕으로 기획, 부분적인 각색을 거쳐 재구성되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기획의도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016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뒤집기>사업은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으로 판결을 해왔던 기존의 관행을 끊고, 성폭력 범죄의 올바른 판결을 유도하여 성폭력 피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대법원의 판결은 하급심 판결의 준거가 될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척도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이에 본 사업에서는 대법원 판례 중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성폭력의 구성요건과 쟁점을 검토함으로써?법의 언어에 여성주의적 인식을 더하고, 성평등한 문화를 확산하며, 사회 전반의 젠더감수성이 증진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합니다’

셰도우 핀즈는 모의법정에 방청책으로 참석해서, 3가지에 집중하며 관찰기록하였습니다. 1) 법정에서의 피해자 보호조치의 방법 등 이행수준, 2) 양측간 진술싸움의 양상, 3)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있어서 ‘위력’의 인정범위

 

1)

피해자의 피고에 대한 공포심이 남아있는 심리상태를 고려해 법정은 ‘피해자 신문’시 신뢰관계인으로서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를 동석시키고, 피고를 법원청원경찰의 안내에 따라 퇴장시켰습니다.?그 외,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할 땐 피해자가 증인지원실에 있는 상태로 음성으로서만 응답하도록 조치했습니다. 2)와 3)은 살펴봐야 할 것들이 많아 따로 트윗타래를 빼내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출간준비중인 ‘Shadow Pins ver.1 :비평적 개인으로서의 피해자를 위한 젠더폭력 법적대응 안내서(가제)’에서 그 대상을 ‘성인/비장애/여성/으로 한정지었음에도 모의법정은 민우회의 첫사람 교육때와 마찬가지로 생각할 지점이 많았습니다.?평소 독서를 통해서 피상적으로만 유추하던 상황이 실제 ‘극’으로 눈앞에 펼쳐지니, 보다 현실적인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고,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의 관점이 법정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실제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Y님은 셰도우 핀즈의 활동 이전부터 각종 재판과정에 참관해 왔으며, 그 경험을 나머지 멤버와 공유하였습니다. 사회적 타자인 성폭력 피해자로서, 관찰자/기록자로서 Y님의 시선과 맞물려 이번 모의법정은 저희가 추구하는 ‘확산하는 연대’의 연장이 되었습니다.

2)

양측간 진술싸움의 양상을 짚어볼까요. 저희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강간과 화간으로 대치되는 입장들이 강조/부인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떤 사회적 통념과 관습이 그것을 강화해주고 있는지도 연결시켜 생각해봐도 좋겠습니다.?이 사건의 세부적인 내용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브리핑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40대 영화감독 겸 연예기획사 대표 피고와 중학생 피해자는 병원에서 만났습니다. 피해자는 다리에 깁스를 한 상태였고 피고는 입원한 아들을 두고 있었습니다.?얼굴이 예쁜데 배우해볼 생각은 없냐는 말로, 또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며 피고는 피해자의 호감을 삽니다. 가계가 빈곤하고 병든 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개인 사정 및 신상정보의 거의 모든 것을 피해자는 피고에게 털어놓습니다.?이후 피고는 피해자와 갖은 구실로 만난 뒤 수차례 성관계를 갖고, 피해자가 임신을 하게된 이후로는 ‘경찰에 신고하면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가출해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권합니다. 그 말을 따른 피해자는 이후 다른 사건에 연루된 피고가?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임신부의 상태로, 거의 매일 접견, 서신 작성, 사무실 관련 일 등의 심부름을 맡았습니다. 그 집을 나와 어머니와 상의후 오로지 ‘진술’을 증거로 피고를 고소했고, 이 대법원 재판 당시 피해자의 나이는 21세였습니다.?보다 상세한 내용과 이에 대한 연구자/여성단체 활동가로서의 관점을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다음의 링크에서 pdf를 다운받으신 후 11p에서부터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2015] 2015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뒤집기 대토론회 자료집 (PDF)

http://www.sisters.or.kr/load.asp?subPage=310.view&cate1=%B9%DF%B0%A3%B9%B0&cate2=A01&page=1&idx=184

이 사건은 수차례의 강간과 강제 추행에 대한 피해 미성년여성의 가해 남성에 대한 고소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물적 증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로 기능할 수밖에 없던 사건이기도 했습니다.?피고(가해자)가 계속 부각시키는 피해여성의 이미지는 옥바라지에 헌신하는 어린 어머니, 진실한 사랑을 배신하고 돈이나 노렸던 꽃뱀입니다. 이 두가지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보이십니까? 그리고 평소 언론, 남성법조인이 이에 얼마나 동조/이입해왔는지도??피고는 최종 진술에서 ‘사랑했다, 모든게 부족한 내 잘못이다.’ 라고 재판관들과 배심원들을 향한 유화책을 펼치면서도, 증거 제출 과정에서 자신의 기획사 사무실 지출내역을 모두 피해자가 자신의 신용카드를 과도하게 사용한 것처럼 덮어씌웠습니다. ?위의 증거를 자신의 여동생과 공모해 조작했다는 사실이 대화내용의 기록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것은 피해자가 소비한게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거의 매일, 80여회의 구치소 접견을 갔던 피해자의 ‘접견실 녹취록’을 살펴 보면,?‘(임신 상태라)허리가 아파서 시킨 일을 못해놨다’고 호소해도 그것을 묵살하고 ‘서신을 더 성의있게, 속달로 거르지 말고 보내라. 인터넷에서 노래가사 아무거나 가져다 쓰지 말고, 사랑한다- 좋아한다- 말 많이 써라’라고 강권했던 대화가 드러났음에도?피고는 자신은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고 잡아떼고, 모든건 피해자가 원해서 한 것이라고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과잉해석해 그것을 ‘기정사실화’시킵니다. 심지어 저 ‘접견실 녹취록’은 1심에서만 증거로 인정 되었습니다.

피고는 피해자의 성역할을 자기중심적으로 고정시키고, 성적자기결정권을 과잉해석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진술에 대한 ‘진술분석가’가 지적했듯이 피고에 대한 피해자의 ‘호감’은 초반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일관되고 순수한 것이었을까요??’아저씨말대로 내가 예쁘다면, 유명한 배우, 연예인이 되어 큰 돈을 벌 수도 있겠다. 아들 걱정할 때보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라고 중학생 당시의 피해자가 판단할 수 있었다해도, 그게 곧 성관계를 맺고 싶고 임신하고 싶다는 욕망이었을까요??피고는 실제로 피해자에게 포르노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라고 시킨 적도 있고, 평소 자신을 영화 감독이라고 과시하면서 성인 여성들과 관계를 맺을 때도 그 여성의 이름을 ‘합정동 핫팬츠 ㅇㅇ씨’라고 주소록에 저장해두던 성차별적 남성이었습니다. ?피고가 단 한번이라도 배우가 되기 위한 직업적 훈련을 피해자에게 시킨적이 있었습니까? 피해자가 성인이었다해도, 처음부터 동료로서가 아니라 성애적 대상물로만 취급했을게 아닙니까? 이러한 관점은 당시 모의법정에서 주요하게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진술분석가’가 자신의 전문가적 관점에 기반해 피해자의 진술이 번복없이 일관되므로 진실에 가깝다라는 것에 힘을 실어주고, ‘배심원단’에서 피해자가 피고에 대한 ‘피학대순응증후군’을 보인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음에도 이 두가지는 실제 법정에서?접견 기록과 정성어린 서신, 친밀한 문자기록들에 비해 강력한 증거로 인정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가시적 증거는 피고에게 유리했고, 모든 비가시적 증거는 피해자의 무력함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대립했습니다.

3)

미성년자 대상의 성폭력 범죄에서 ‘위력’의 인정범위에 대해 짚어볼까요. 한국, 그리고 미국에서 청소년의 성보호는 법리적으로 어떻게 범위지어질까요.?피고인의 변호사는 최종진술에서 ‘형법적 판단’은 ‘사회적 비난’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통념상, 가해자의 사랑이 이해받기 힘든 것일지라도 그것은 강간이 아니라 합의하에 이루어진 화간이었다고, 모든 가시적인 증거가 그것을 뒷받침한다고?결론짓습니다. 피해자가 피고에게 보낸 정성어린 서신과 80여회의 구치소 접견기록, 친밀하게 보이는 문자대화내역이 그 ‘비강제적 사랑’을 증명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사건 대법관 민일영과 박보영, 주심인 대법관 김신과 권순일 역시 그것에 동의한 것이고요.

해당 사건의 피고처럼 물리적 폭력 없이 비가시화된 ‘강제적 강요’에 의해서 미성년의 여성이 가해 남성과 성행위를 했을때, 미국의 법리라면, 그것도 1980년대 미국의 법리라면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처음부터 미성년자 피해자에게 유리했을까요?

 

*아래의 책에서 발췌한 관련 파트를 함께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장임다혜, ?’여성의 언어와 경험에 기초한 강간죄 해석의 가능성’,『성폭력, 법정에 서다 Sexual violence on trial: 여성의 시각에서 본 법담론』, 한국성폭력상담소, 2007, 188-195p ?

 

‘남자 어른’이라는 위치에서 중학생 청소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도덕적/심리적/지적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 발상일까요? 하지만 미국역시 1986년의 로도스판결에 이르러서야 그것을 법리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성관계하지않으면 보호소로 돌려보내겠다는 8세여아에 대한 협박, 어머니 역할을 강요하며 성관계 거부시 여동생과 대신 하겠다는 17세 소녀에 대한 협박이, 피해자들의 성적자기결정권보다 미약하다고 보는 수준, 거기에 2016의 한국이 머물러 있진 않습니까??해당사건에서, 피고가 전처를 미행할 때 피해자를 동석시켜 벽돌로 차유리를 부수는걸 보게끔하고, 또 피고의 페이스북에서 모 살인사건의 증인 출석요구를 알리는 서류가 공유된 것을 피해자가 보면서 그 ‘공포’는 합리적으로 발생했습니다. 물리적 폭행 없이도.

 

[3]

한가지 매우 아쉬운 것은 가해자에 대한 ‘거절’ 의사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기록으로서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선 ‘피학대 순응증후군’이나 ‘가스라이팅’은 법리적 증거로서 인정되지 않고,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살인했을 시에?감형의 고려대상 정도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피고인과의 만남초기, 당시 중학생인 피해자는 ‘키스만해도 임신이 된다’를 믿을만큼 왜곡되고 빈약한 성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고소는 실제 벌어진 추행과 강간보다 한참이나 시일이 지난 뒤에 진행되었습니다.?피해자는 재판 당시까지도 피고인에 대한 공포를 지우지 못했고, 해당 사건 때문에 청소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양질의 교육권마저 박탈당한채로 21세가 되었습니다. 대법원이 보장한 이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 대체 누구의 각본속 욕망이었습니까??이 대법원 판례, 향후 인용되는 판단근거 되는 게 아니라, 변경하고 뒤집어야 할 대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재 성인이 된 피해 여성이 남은 생애에서 그 변화를 꼭 목격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