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이사람]여경의날 특진, 김수진 경위 “가명조서로 성폭력피해자 권리 되살려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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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표주연 기자 = 국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지만 그동안 사문화됐던 ‘가명조서’를 활성화 시킨 여성경찰이 공적을 인정받아 ‘경감 특진’ 대상에 올랐다.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김수진(46) 경위는 현장에서는 번거롭다는 이유로 외면받았던 ‘가명조서’를 활성화해 국민의 권리와 안전에 보탬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경의 날을 맞아 특진 대상에 오른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김수진 경위를 지난 30일 만났다.

김수진 경위는 1992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직했다. 스스로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 아니라고 소개한 김 경위는 왜 경찰을 직업으로 택 했을까.

김 경위는 “경찰의 업무에 대해 초창기에는 굉장히 소극적으로 생각했다”며 “근무복을 입고 차를 나르거나, 얌전하고 착실하게 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며 웃었다.

그는 “최불암씨가 출연했던 수사반장에 나왔던 여경의 이미지가 딱 그랬다. 당시에는 일부 민원실에만 여경을 배치하는 등 여경의 위상이 조직에서 크게 낮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경으로서 힘든 것이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엄청 많았다”는 반응이 바로 나왔다. “경찰 전체에서 여성이 소수이고 문화가 남성 위주라서 상당한 애로사항이 있었다”며 “개인적으로 성격도 더 활달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스스로 경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여경이 가진 섬세함과 감수성은 21세기에는 매우 필요한 덕목”이라며 “(이젠)발로 뛰지 않아도 더 중요한 일을 할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는 여성 경찰로서 국민을 위한 섬세한 정책으로 공적을 인정받아 특진대상에 올랐다. 이미 법에 규정됐지만, 거의 쓰이지 않아 ‘사문화’됐던 제도를 되살렸다.

경찰에는 ‘가명조서’라는 제도가 있다. 조직폭력 피해자나 관련 증인, 성폭력 피해자 등 보복이나 2차피해가 우려되는 사람들이 가명으로 조서를 쓸 수 있는 제도다.

그러니 이 제도는 현실에서 거의 쓰이지 않았다. 가명으로 조서를 꾸미는데 번거로운데다가, 서식도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가명조서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김 경위가 경찰병원 원스톱센터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직접 만나면서 주목한 부분이 바로 가명조서였다. 상당수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진료와 조사기록 등을 삭제해줄 수 있냐고 물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성폭펵 피해자는 보복의 우려가 없어도 가명조사를 할 수 있다고 법에 되어있지만 실제 적용한 사례 거의 없다”며 “가명조서를 작성하면 전산시스템에도 가명을 넣어야하고, 서류도 바꿔야해서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치스러워하고 2차피해를 우려하는 일이 많다”며 “이들이 당당하게 신고를 할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법에도 규정된 가명조서를 쓰기란 쉽지 않았다. 일단 거의 쓰지 않는 제도라 조언을 구할데도 없었고, 어떤 동료들은 “번거롭게 왜 그러냐”는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는 일단 서울 지역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상담을 할 때 “가명으로 해드릴까요?”라고 물어보는 것을 의무화했다. 그런 법제도가 있다는 것을 무조건 고지하도록 한 것이다.

이같은 조치의 효과는 놀라웠다. 그는 지난해 9월, 가명조서를 382건 작성해 검찰로 넘겼다. 거의 전무했던 가명조사였전 점을 감안하면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치다.

이에 놀란건 검찰이었다. 초기에 검찰은 “이게 뭐냐”는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곧 대검찰청은 가명조서 관련 지침을 만들어 예규로 못 박았다. 김 경감의 노력이 상급기관에서 결실을 본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경위는 “가장 먼저 조언을 구할데가 전혀 없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며 “가명조서 쓰기는 사실상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신변안전 안전이 최근 화두인 것 같다”며 “내가 아니었어도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이런 조치가)활성화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경위는 “정년퇴직까지 13년 정도 남은 것 같다”면서 “지금까지 승진을 빨리한 편도 아니고, 승진이 목표였던 적도 없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제 경감이 되면 중간관리자로서 묵묵히 일하고도 제대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후배들을 찾아 꽃을 피워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직업을 통해 하는 일이 전부 국민에게 봉사하는 일”이라며 “국민에 봉사를 하면서 국가의 녹봉을 받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pyo0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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