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핑턴포스트] 성폭행이 뇌에 미치는 영향

http://www.huffingtonpost.kr/2014/12/15/story_n_6325384.html

 

최근 미국 매체 롤링스톤스지의 대학교 성폭행 기사가 화제다. 제대로 사실확인을 하지 않고 기사를 내보냈다는 비판으로 언론의 책임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의 주 내용은 ‘재키’라는 여성이 버지니아 대학교 1학년 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롤링스톤스의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가 이어졌는데, 재키의 상황 설명과 사건 당시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 상당 부분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일부는 이러한 차이점을 지적하며 재키의 이야기가 속임수 혹은 최소한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이 반응을 접한 시민 운동가들은 부정적인 보도가 성폭행 피해자의 진술(통계상 92~98%가 진실을 이야기함)을 의심하는 문화를 굳히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성폭행 피해자의 희미한 기억이 거짓일 수 있다는 논리는 틀릴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과학적으로도 뒷받침되지 않는다.

이번 강간 사건이 현재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해도, 법의학 컨설턴트이자 성폭행 전문가인 데이비드 리색은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입은 생존자의 기억이 분열되고 정확하지 않은 경우는 매우 흔하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을 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데이비드 리색은 “이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모든 걸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 말이다.”라고 허핑턴포스트에 설명했다. 리색은 피해자는 무질서하게 흩어진 여러 요소들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고자 하며, 누구를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체험한 것을 이해하려다 실수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억력이 정확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려면 트라우마에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야 한다. 트라우마로 인한 극심한 공포는 생존의 위협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 공포에 대한 반응과 스트레스 대처 능력을 결정하는 뇌의 편도체, 그러니까 파충류 뇌(생명 중추인 뇌줄기. 파충류의 뇌가 인간의 뇌줄기에 해당하는 형태와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의 일부가 작동한다. 편도체가 위험 신호를 울리기 시작하면 뇌와 몸이 긴장하며 우리 몸은 자동으로 생존 모드에 들어간다.

그리고 편도체 신호에 의해 부신(아드레날린과 다른 호르몬을 분비함)에서 대량의 아편성 호르몬이 방출된다. 이 호르몬과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은 트라우마를 겪는 이의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는 작용을 한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트라우마를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진화론 차원에서 이해를 할 수 있다. 즉 트라우마를 기억해야 그 위험을 다른 이들에게 공유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미시간주립대학교의 공동체 심리학자이자 성폭행 관련 신경생물학 강의 경험이 많은 레베카 캠벨은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몸에서 분비된 호르몬이 편도체와 해마가 사건을 암호화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피해자의 기억력에 손상이 갈 수 있다고 한다.

캠벨은 “뇌는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을 정렬하려고 한다”며 “문제는 그런 호르몬이 트라우마에 대한 뇌의 정확한 재현을 방해한다는 것”이라고 허핑턴포스트에 설명했다.

더군다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세부적인 장면을 일부 놓치더라도 우선 가장 위협적인 부분에 대해 모든 신경을 쏟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세부적인 요소(예를 들어 무슨 티셔츠를 입었는지)는 기억할지 모르지만 어디서 또는 언제 성폭행을 당했는가에 대해선 기억이 희미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정확한 기억을 방해하는 요소가 또 있다. 캠벨은 “피해자는 그 순간 자신에게 가장 큰 위험이라고 느끼는 요소에 집착할 수 있다”며 “그 한 가지에 모든 걸 집중하면 다른 요소를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주변적인 요소는 신경에서 멀어지며 사건 이후의 재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라고 말했다.

캠벨은 이런 상황을 대학 강의를 들으며 작은 포스트잇 조각들로 노트하는 것과 비교했다. 여러 개의 포스트잇에 노트를 했지만 강의가 끝날 때 조각들은 바닥에 흩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캠벨은 “이 포스트잇들은 저절로 모여 체계적으로 재구성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피해자는 기억을 완벽하게 재구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의심받고 신빙성을 잃는다. 캠벨에 의하면 성폭행 트라우마로 기억이 조각난다는 것을 입증하는 신경과학이 존재하고, 이경우 피해자는 어떻게 배려하고 사건은 어떻게 조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안도 제시된다고 한다. 하지만 법률관계자들이나 대학 측에서는 이를 거의 무시한다고 한다.

트라우마 피해자의 기억력에 대한 이해가 없는 법률관계자, 혹은 친구, 가족, 대학 관계자들이 피해자의 “2차 피해”에 자신도 모르게 가담하는 것이다. 즉 피해자는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들로 인해 다시 한 번 상처를 받는다.

캠벨은 “피해자는 자신의 신뢰성, 진실성, 행동이 의심되면 매우 곤혹스러워한다”며 “즉 조사에서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중심이 되어버린다”고 말한다.

캠벨과 리색은 트라우마와 관련된 기억력이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교육과 인식의 전환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이러한 지식이 피해자 심문 과정에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심문이 진찰실, 대학 캠퍼스에서 이루어지든, 이번처럼 불행하게도 언론의 장에서 이루어지든 상관없이 말이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의 기사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