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미투 1호 사건 1심의 무죄판결에 부쳐
❶ 셰도우 핀즈는 목격했다
안희정 사건 선고 직전, “사법부의 명운이 걸렸다”던 법조계에서 나온 거창한 분석과 평이 민망하고 무색해질 정도로 1심 판결문은 엉성했으며, 그를 통해 한국 사법시스템의 부실한 실체와 결함만이 드러났다. 재판장들은 지금 당장 입고있던 법복을 벗어 내려놓고 여성들과 입법활동할 것도 아니면서, 법적 #미투 1호사건의 무죄판결을 내림으로서 이후 사건들에게 판례로서 모범을 보여줄 것도 아니면서, 페미니즘과 법여성학의 언어를 변명으로 소비했다. 이것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발맞춘 것이 아니다. 남성 법조인으로서 만든 ‘자기합리화’의 결과였을 뿐이다. 여성이 일터에서 약자로서 처하는 곤경과 직장 동료·하급자·상급자가 아닌 성적인 대상물로서 여겨지는 위협을, 피해자 진술과 목격자 증언에서 읽어내고 인지했어야 할 판관의 눈이 이 재판부에게는 부재했으며 그 부재는 피해당사자와 여성들에게 사회적 재난을 초래했음을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구닥다리 ‘법리’를 이성적으로 철저하게 따졌다는 남성 법조인들이 허구의 ‘피해자상’을 맹목적으로 고수하고 ‘무형의 위력’을 그 어느때보다 소극적으로 해석해놓고, 형법 제303조를 화석화시켜 쓸모없는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유죄판결을 내릴 수 없는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놨다고 해서, 이 판결 때문에 만들어진 여성 시민권 훼손의 피해는 회복되지 않는다.
이 1심 판례의 판결문이 향후 수십수백년동안 법조계 안팎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며 최악의 퇴보이자 역사적 걸림돌, 허약한 지체상태 그 자체로 인용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계속 목격하겠다.
❷ 셰도우 핀즈는 반문한다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피해를 보상받기가 요원한 성폭력 사건들 리스트가 길게 이어질 수록, 여성들은 사법시스템과 그 구성원들에 대해서 점점 더 공포심과 적대감을 갖게 된다. 이 때, 사회의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는 ‘법’은 어떻게 탁상공론으로 전락하는가? 반세기넘도록 요지부동이었던 형법의 법리는 피해당사자 진술과 사건 맥락의 역동성 앞에서 어떻게 무용지물이 되는가? 법을 만들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남성이라는 하나의 성별에 편재해 있을 때, 물증 없는 진술을 증거로 수용하는 인지적 과정은 남·여 모두에게 공정할까?, 이러한 질문이 현·예비 법조인들에게 던져질 때, 어떤 질문은 멈추고 어떤 질문은 비로소 단초가 마련된다. 피해당사자에게로 향하던 2차 피해 유발성 질문이 멈추고 가해자에게로 사건의 책임을 묻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종종 반문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질문의 대상과 내용을 바꾸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더 세부적인 반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피해당사자가 평소 어떤 말과 행동을 했고, 평소 주변인들이 그에 대해 가졌던 평가가 어떠했는지가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는가? 그것들이 그에게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의 자격 부여 여부를 결정하는가? 발언과 태도의 일관성을 먼저 깨트리고 번복과 정정을 일삼은 것은 피고 안희정과 그 측근들 아니었나? 국내에도 이미 무형의 위력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판례가 있는데도 이번 1심 판결은 왜 그 판례들을 유의미하게 참조하지 않았는가? 피해당사자들은 판사의 재량·성별·성인지 감수성 수준에 의해 유·무죄가 오락가락 좌우되고 2차 피해를 실질적으로 방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어떤 권리를 박탈당했는가?
한국의 남성 수사관과 판관들은 미망에서 깨어나 여성들이 직장내에서 하나의 유사한 차별·폭력 경험을 갖는 집단임을 인지해야 한다. 아집과 독단으로 인해 계속 생겨나는 판단오류를 수정하고 자신보다 약한 자의 눈으로 사건을 복기해야 한다. 무지와 무능을 인정하고 전문가와 활동가들의 소견을 판단근거로 수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계속 반문하겠다.
❸ 셰도우 핀즈는 추적한다
정계에 있는 남성들이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사용해서 정계내 혹은 정계외에서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여성을 착취해 온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이 관성은 좌·우,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만연해 있었다. 추문을 무마하고 권력자의 부서지고 희화화된 체신을 수습하기에만 급급해서, 침묵과 자숙으로 모든 혼란을 뒤덮고 개선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공백으로 남겨둔다면 바뀌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곧 여성이 정계 내에서 일할 때 부딪치는 곤경과 위협에 대한 업계내 상급자들의 고의적 무시이고, 정계의 일을 오직 ‘남성만이 할 수 있는 일’로 남겨두는 성차별이다. 이 두가지가 장기적인 계획과 책임하에 개선되지 않는 상태에서, 몇몇 예외적인 비좁은 자리를 만들어 여성을 고용한다 한들, 그 여성들은 다시 한번 직장 동료·하급자·상급자가 아닌 성적대상물로서의 여자로 여겨질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옷차림·말투·화장 등을 스스로 끊임없이 검열하거나, 일찌감치 기혼자의 인생을 감내하거나, 여성 상급자인데도 남성하고만 일을 하거나, 업계를 완전히 떠날 것이다. 이 점이 안희정 사건 1심 판결이, 정계 내 업무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여성들에게만 끼칠 부정적 여파이다. 정계에 있는 남성들은 다소 위축될 지언정 구시대의 습성 못버리고 하던대로 할 것이다. 이점 분명히 두고두고 회자되어야 하며, 그 이후의 저지선 역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무형의 위력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피해자 진술을 강력한 증거로서 수용시키는 그 모든 과정은 급진적인 페미니즘, 법여성학의 의제이다. 우리는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건의 경우 정계에서 일하는 여성의 문제 역시 중첩되어 있다. 피해자가 회복지대를 거쳐 돌아가야 할 곳, 그리고 문제적 가해자가 다시는 돌아가서는 안될 곳, 유사한 패턴의 사건을 앞으로 겪을 피해자가 일하고 있는 곳은 모두 같은 업계일 수 있다. 우리는 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 업계가 바뀌는 것을 목표로 계속 과거로부터 현재로의, 현재로부터 미래로의 추적을 하겠다.
다툼과 갈등 속에 있는 여성들에게 안부를 전하며
2018.08.29 셰도우 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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