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충남도지사 안희정 사건 2심 결심공판 방청기 (2): 논평

_작성자: 테오즈


피고인 안희정의 화법은 무엇을 감추기 위함인가

지난 1월 9일의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 안희정씨는 아래처럼 진술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사실은 고소인의 주장과 상반된다. / 그러나 고소인을 존중하고 위로하고 싶다.

제가 가진 힘으로 상대의 인권과 권리 빼앗은 적이 없다. /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며 반성하고 있다.

뒤의 문장들이 참이 되려면 앞의 문장들도 참이어야겠지요. 자신이 행위자였던 ‘죄’에 대한 직시와 인지 없이 그 어떤 반성도 가능하지 않은데 뭘 ‘반성’하고 뭘 ‘책임감’을 느낀단 말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식의 화법은 피고인 안희정씨가 평소에도 즐겨 사용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내 유력한 차차기 대선주자·경선 후보자로서 2017년 당시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시기에, 안희정씨는 ‘선의(善意)’와 관련된 말 몇 마디로 홍역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사소한 언어습관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사소한 것’에 문제의 핵심을 우회하는 피고인의 나쁜 습관이 드러나 있다는 생각으로 잠시 인용합니다.

안 지사는 20일 제이티비시 뉴스룸에 출연해 “(이 전 대통령·박 대통령) 본인들께서 선의라고 주장하니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것”이라며 “그것이 국정농단의 수사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그 과정에 모든 과정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손석희 앵커가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이 선의였다고 주장했는데 그럼 그 주장을 일단 받아들이겠다는 얘기인가”라고 묻자, 안 지사는 “현재 수사를 보면 그것은 부당한 정치적인 국가 압력이거나 부당한 거래라고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 과정 전체를 지금 ‘선한 의지였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의라고 하는 것은 선악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주장에 대해 그분이 주장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부산 강연에서의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선의와 관련된 발언이 ‘소신’임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1]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이 ‘선의’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만들었더라도 문제가 없냐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통해, ‘747공약’을 통해 장담한 연평균 성장률 7%를 달성했다면 괜찮냐는 것이다. 정책적 토론이라는 것은 바로 이 경우의 효용을 검토하는 것이지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무슨 의도를 갖고 어떤 사업을 추진했는지를 따지는 게 아니다.[2]


<인터뷰>
손: 정치인은 자신의 생각을 퍼뜨리길 원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정당하다고 보는 것이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정치에 뛰어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안: 네
손: 그러면 안지사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 정치인이든 아니든… 정치인의 어떤 행위가 일단은 ‘선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원한다는 말씀이시잖아요.
안: 우리가 ‘선한 의지’라는 단어 때문에 서로간의 대화를 하는데 굉장히 장애를 겪고 있는 겁니다.
손: (웃음) 저는 뭐 별로 ‘장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안: 왜냐면… 우리 모두는 어떤 주장을 할 때, 그것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주장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손: 제가 이렇게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잘 아시겠습니다만은. 대선에 나가시는 분이고
안: 네
손: 국정을 책임지실 분이기 때문에. 만약에 당선이 되신다면. 국민으로서는 그분이… 각종 정치적 현상이라던가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아직 이해를 못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안: 네.
손: 저의 생각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이해 못하고 있는 분들도 대변해드려야 하는 거니까요. 그러면… 예를 들어서 언론에서는 당연히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언론의 입장은 늘 무조건 의심한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을 하고 그에 따라서 분석하고 문제가 있으면 비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꼭 언론의 입장은 아닙니다. 왜냐면 언론은 다른 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단지 “난 정치인이고 정치인의 영역에서 얘기하는 것이야”라고 얘기한다면… 그걸 시민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겠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안: 그런데 제가…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그 사람이 뭔가 주장하는 바대로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자- 이것을 전제로 해야만 우리는 그 대화를 좀 더 잘 할 수 있고… 그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어떠한 잘못을 수정해내는 데 더 빠른 길이다라는 저의 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손: 아니(웃음) 어렵지 않습니다.
안: (웃음)
손: (웃음) 그것은 얼마든지 이해합니다.
안: 예, 예
손: 다만, 그 ‘이해’가…. 모르겠습니다. 하필 이때라서 그런진 모르겠는데, 4대강과…
안: 이 얘기와 똑 같은 얘기는 2013년에도 제 페이스북에 이미 써놨습니다.
손: 그건 제가 못 봤습니다.
안: 예

<댓글>
“도대체 어떻게 봐야 선의로 시작한 일이 비리범벅의 과정으로 이루어집니까? 그렇게 필터링없이 모두 선의로 받아들이신다면 딸뻘을 성추행한 성추행범이 ‘그게아니라 딸같아서 그랬어~’ 라는 소름끼치는 말을 아 그랬냐며 받아들인다는 말이네요. 논란이되니 대화를 위한 오픈마인드와 포용력의 필요성을 말씀하시려는것 같은데 그건 포용력이 아니라 분별이없는겁니다.”
“나이는 제일 젊은 후보인데 말은 젤루 노회하고 진부하다. 게다가 가르치려는 저 태도가 몹시 거슬린다.”
“”제 말이 어렵습니까?”의 문제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 말하면 논리가 부족한 것이지요. 손석희씨가 그 정도 논리도 해석 못할 사람이라 생각하십니까? 거기다 대고 “내 페이스북에 다 써놨으니 읽어봐라” 는 식으로 답하시니ㅋ 참 어이가 상실이네요ㅋㅋ”
“안지사님이 지금하는 행동이( 상대의 질문이 뭔지 부터 파악하고 선의지인지는 그 다음인거 같은데 )질문에 대한 답보단 본인의 변명과 자신의 생각만 말하는군요. 실지 질문에 대한 이해는 하셨는지… 본인의 불분명한 논리에만 빠져있는듯…말이 어려운게 아니라 구체적 핵심이 아닌 포괄적 언어로 포장해 버리니 실체가 없어 보여요.”[3]

자신의 정치적 적수들과 ‘선의’ 하나만으로 대화합의 장을 이루는 자의식을 가진 정치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의문인데, 대선후보자로서 정책토론장에 나와서 자신의 괴이한 소신을 밝히는 근자감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여전히 ‘대한민국 정치인 한 사람’으로서 소개하는 피고인이 관철하고 싶은 정치는 과연 무엇일까요. 피해자의 주장이 자신의 경험과 다르지만 위로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말은 공허하고도 허약합니다. 페미니스트이자 여성유권자인 저는 그 정치에 아무런 지지를 보내지 않으며, 또 안희정씨가 과거·현재에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떤 의도와 선의를 가졌는지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 행위의 결과가 그가 수장이었던 조직의 하급자 여성의 인생을 위태롭게 만들었고, 안희정씨는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지위의 남성이라는 점만이 제게는 중요합니다.

페미니스트는 그 누구보다 정치적으로 깨어있는 여성입니다. 때문에, 페미니스트라면 누구나 피고인 안희정씨의 그런 정치,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에 큰 의문을 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을 기반으로 사태를 책임지고 바로 잡는 태도가 결여되어 있는 자가 만드는 미래는 여성에게 과거보다 더 어두운 시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 일을 흠 없이 처리하는 여성들에게는 성폭력 피해 경험이 없는가

모든 성폭력 피해자 여성들은 입체적인 면면과 행위성,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과 약점을 가진 인간이며, 김지은씨의 경우 ‘일중독’이라 할 만큼 일 욕심이 있었던 전문직 종사자 여성이었습니다.[4] ‘일을 그르치면 안 된다’는 압박감으로 자신을 통제했고, 여성은 잘 발탁되지 않는 수행비서 일을 해내며 ‘여성은 안 된다’, ‘끈기가 부족한 애야’라는 평가를 듣고 싶지 않아서 악착같이 일하던 여성이었습니다.[5] 그런데, 그 업무상 흠결을 남기지 않으려 했던 모든 성실한 노력들이 재판 중 가해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쓰이고 피해자 답지 못한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6] 피고인의 변호인들은 ‘진정한 피해자’라는 좁은 개념 틀을 가지고 김지은씨의 고통이 충분히 가시화되지 않은 점이 의문이며, 적극적인 거절의사를 표현하지 못했을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7] 이는 철저히 남성의 시각에서나 내릴 수 있는 판단입니다. 남성들은 직장내 전문직 여성이 가지는 성차별/성희롱/성폭력 경험의 내용을 모르며, 그것이 얼마나 은폐되어 있는지, 사건이 공개되는 순간 얻게 되는 불이익과 업계 내 낙오는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자존이 높고 일 욕심이 있는 여성들일수록 선택을 하기에 앞서 남성이라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거듭 하게 되는 것입니다.[8] 은폐되었다고 해서 그 피해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공론화가 시작되거나 혹은 순간적으로 적극적인 대처를 했다고 해서 극적으로 보다 나은 결론을 맞이하는 것도 아닙니다. 미투를 응원하고, 또 그 흐름에 동참하는 많은 여성들이 이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들이 피해자 김지은씨가 만들어낸 목소리들과 닮아있습니다. 이것은 집단적 경험으로서 매우 구체적인 패턴을 만들고 있습니다. 2심 재판부, 그리고 더 많은 가해자, 잠재적 가해자들은 다음의 목소리들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성은 아직 직장 내 소수로, 항상 밝게 웃지 않고 싹싹하지 않으면 히스테리적, 감정적 업무 처리라며 비난을 받고, 밝게 웃고 친절하게 대하면 생각보다 많은 유부남 아저씨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조금만 살펴보면 그 미소가 자기에게만 향한 게 아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혼자 연애를 시작하고 치근덕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본인도 무리수임을 무의식 중 알고 있기 때문에 상사로서. 직장 동료로서의 걱정과 남자친구로서의 걱정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하여 피해자의 입장에서 대응하기 곤란하게 만듭니다. 남자들에게 교육해주세요. 하트 이모티콘 썼다고 본인을 좋아하는 게 아님을. 본인의 커피 취향을 기억 한다고 좋아하는 게 아님을. 본인의 축구 실력이나 넥타이를 칭찬 했다고 좋아하는 게 아님을. 1대1 카톡 대화에 응했다고 좋아하는 게 아님을. 피해자가 업무나 생활상 고민을 이야기 한다고 좋아하는 게 아님을. 남자들에게 착각하지 말 것을 교육했으면 합니다. 직접적인 말 속에 개인적인 호감 표시가 명백했으면 모를까, 이 모든 게 하루에 일어나도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증거는 못 됩니다. 남자 혼자 연애하며 치근대다가 혼자 폭발하는 것,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호사)”[9]


“2차 피해가 우려되어 아무런 문제제기를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후배들이라도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되었으면 좋겠고 이러한 상황이나 피해에 대해 직장 내에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지은씨 경우를 보면서 미투를 한 여성이 어떻게 매도되는지 알게 되었고, 여성들이 왜 No라는 말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전문직이고 정규직인 저도 Client로부터 겪은 성희롱을 직장 내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래서 여자는 같이 일하기 불편해”라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서. 그런데 비정규직 비서가 까마득히 높은 보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실태나 사례를 발굴해서 널리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회계사).”[10]


“여성은 안 그래도 차지할 수 있는 파이가 적은데 성폭력에 이의를 제기하면 그것을 빌미로 조직순응 못한다며 입지가 좁아져서 이의제기하기 너무 어렵습니다(변호사).”[11]


“주로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 파견직 젊은 여직원이 피해자가 되고, 이들은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에는 불이익이 두렵거나 어차피 오래 다닐 직장이 아니므로 체념하거나 하는 문제가 있음. 전문직. 정규직 여성이 피해를 당한 경우 주변 모두가 나서서 가해자를 배척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만, 피해자사회적 지위가 낮은 경우 오히려 꽃뱀 취급 받거나 크게 주목해주지 않는 등 문제 삼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많다는 점이 안타까움(변호사).”[12]


성희롱/성폭력 문제는 고용상 차별이자 인권문제 _최혜령(국가인권위원회 성차별시정팀장)

“저희가 성희롱 진정사건을 조사하면서 느낀 점은 전문직의 경우 위계질서가 강하고, 소속집단에 대한 보호의식이 있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구제보다 성희롱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고,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조직에 피해를 주었다는 비난을 감수하여야 하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또 자존감이 강한 전문직 여성의 경우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어 조직의 공식적인 문제해결 절차보다는 주변인과의 상의를 통해서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13]

 


[1]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83514.html

[2]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1249

[3]

[4]

http://women21.or.kr/rights/12351

[5]

http://women21.or.kr/rights/12351

[6]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4326

[7]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4326

[8] (사)한국여성변호사회,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마련』, 218p

http://www.kwla.or.kr/sub0402/1657

[9]  (사)한국여성변호사회,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마련』, 91~92p

http://www.kwla.or.kr/sub0402/1657

[10] (사)한국여성변호사회,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마련』, 94p

http://www.kwla.or.kr/sub0402/1657

[11] (사)한국여성변호사회,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마련』, 95p

http://www.kwla.or.kr/sub0402/1657

[12] (사)한국여성변호사회,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마련』, 96p

http://www.kwla.or.kr/sub0402/1657

[13] (사)한국여성변호사회,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마련』, 218p

http://www.kwla.or.kr/sub0402/1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