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충남도지사 안희정 사건 2심 모두진술 방청기 (2): 논평

_작성자: 테오즈


# 법을 기만하고 있는 것은 피고인 안희정이다.

전직 충남도지사 안희정씨는 2018년 3월 6일 0시 50분경에 아래처럼 페이스북 포스팅을 작성했습니다. 이 글에는 안희정씨가 자신을 옹호하던 비서실의 입장까지 손수 번복해가며 잘못을 시인하고 있었다는 점, 피해자가 그로 인해 받은 고통까지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 있습니다.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 무엇보다 저로 인해 고통을 받았을 김지은 씨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입니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 오늘부로 도지사 직을 내려놓겠습니다 / 일체의 정치 활동도 중단하겠습니다 / 다시 한 번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 안희정 올림[1]

 

불과 지금으로부터 10개월 정도 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12월 현재 안희정씨의 변호인 측에서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성폭력은 아니다”[2]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판국에서, 한 국가의 사법시스템과 법관들을 우습게 보고 그 권위를 기만하고 있는 자가 과연 누구입니까. 1992년에 한국 역사상 첫 직장 내 성희롱 손해배상 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인단 소속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시 재판부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는 것을 상기해봐야 할 때입니다.

 

항소심 판결을 한 판사는 “모든 부도덕이 법의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성희롱 당했다고 57억원의 지급을 명한 그 사회는 얼마나 도덕이 바로 법인 사회이겠는가. 여성의 운명이니 받아들이라는 우리 사회의 법의 도덕지수는 그 나라의 57억분의 1도 안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3]

 

법은 한 국가의 도덕지수를 나타내고, 또 그것을 수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미투가 퍼져나가고 있는 현 시국에서, 26년전의 저 말, 2심 재판부가 진지하게 새겨들으시길 바랍니다.

 

# 실체적 진실확인과 무관한 진술만 했던 자들이 피고인 안희정의 증인들이다.

앞으로 2심중에 있을 증인 신문들은 모두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라 우려가 큽니다. 1심 재판 당시, 극심한 강도의 2차 피해를 유발시킨 책임이 있는 안희정 측 증인 중 하나는 ‘립스틱을 바르지 않아서 프로의식이 부족한 여자’등의 묘사를 하며[4],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는 피해자의 여성성/외모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안하무인격의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이를 비롯한 많은 피해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에만 혈안이 됐을 뿐, 막상 그 내용만 보면 무의미했던 첨언들 앞에서 재판부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그 말들이 2차 피해를 양산해는 지 인식도 못했습니다. 법정은 아무 시정잡배나 증인석에 세워서 남의 험담이나 실컷 하다가 가도 되게 놔두는 무질서한 장소가 아니고, 법리적 판단에 도움이 되는 실체적 진실만을 확인해야 하는 ‘공적 장소’가 아닌지요. 그 증인들이야말로 재판을 방해한 자들입니다. 또한 그 문제적 증인들은 법적 처벌은 커녕, 일부는 본래 있던 직장 내에서 부서이동 정도로만 자리를 옮긴 뒤 아무 징계처분 없이 멀쩡히 근무도 하고 있습니다.[5] 피고인 안희정이 어떤 부도덕한 이들의 입을 빌어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지, 그들이 하는 저급한 진술이 과연 실체적 진실확인에 도움이 될만한 것인지, 2심 재판부는 더 강하게 경계하고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 정상적인 법이라면, 특정 남성이 각색한 로맨스의 상상력이 아니라 이 사회에 실재하는 여성들의 현실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후원하고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주최한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및 대책마련’ 자료집 서두에는 미투 시국에 대해서 아래처럼 진단합니다.

 

그런데 교수, 의사, 기자, 회계사, 변호사 등 소위 전문직 여성들의 경우, 교육 수준이나 소득 수준 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에서 보다 안전할 것이라는 잘못된 외부적 시선과 더불어 피해사실이 알려졌을 때 입게 되는 불이익이 훨씬 클 수 있다는 불안감 등으로 인해 오히려 피해를 숨기는 사례가 많다.[6]

 

위의 관점을 기반으로, 1심 재판부가 어떤 판단 착오를 겪었는지를 2심 재판부는 되돌아 보기를 바랍니다. “그루밍은 미성년자에게 주로 일어나는 것으로 전문직으로 활동하는 성인 여성의 경우 단기간에 그루밍에 이를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한 1심 재판부[7]는 ‘피해자의 나이’만을 척도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아무리 성인이고 또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전문직 근무자여도, 1) 근무한 직종의 성격과 2) 가해자의 위력 특성 및 강도에 따라 그루밍의 대상이 손쉽게 될 수 있습니다. 국회와 정치계가 얼마나 경직된 위계질서 하에 운영되고 극심하게 남초화된 집단인지, 차차기 대선후보로 거론 되던 안희정 전 지사가 얼마나 폭넓고 부드러운 위력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지, 이 두 가지가 피해자를 오랜 시간 침묵하게 만들었던 현실적 제약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판단이야말로 실체적 진실을 향한 법의 접근을 가능케 하는 단초이며, 안희정 측 증인들과 언론이 양산해 냈던 로맨스 서사[8]의 허구성을 간파할 수 있는 법조인의 혜안일 것입니다.

 

# 여성의 권력형 성폭력 피해경험은 집단적/구체적이고, 신빙성/객관성/합리성을 모두 충족한다.

전국여교수협회, 한국여자의사회, 대한전공의협의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공인회계사회, 대한여성변리사회, 대한여성건축사회, 전국여성법무사회, 한국여성항공협회, 한국비서협회의 협조 하에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실시한 2018년 설문조사[9]에서는 약 8.26%의 전문직 여성들만이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불쾌하다는 표시를 하였다.”고 밝힙니다. 가장 많이 선택했던 사후대처 방법으로는 “모르는 척하거나 슬쩍 자리를 피했다.”로 28.96%이고 “농담으로 웃어넘기거나 분위기에 동조하는 척하였다.”는 대처도 22.10%, “별다른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도 19.31%로 수치가 작지 않습니다. 또, 대처를 하지 못한 이유로는 “당황하여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가 27.12%, “분위기를 깰까 봐” 19.19%, “나에게 업무상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17.46%가 가장 많습니다.

이 통계들은 많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그 특성상, 사건에 대한 가시적인 흔적이 많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동의(YES)’로 자주 오인 받는 행동들이, 사실은 순간적인 얼어붙음이나 업무상의 불이익 때문에 억지로 하게 된 반쯤의 ‘비 동의(NO)’였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이 여성의 집단적 경험에 대해서 한국 사회와 법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에 대한 인지와 판단을, 한낱 몇몇 예외적 여성만이 하고 있는 주관적인 감상으로 격하시키는 일 없이 그 경험적 사실들의 신빙성/객관성/합리성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 판단이 있을 때, 1심이 부당하게 축소해 놓은 위력이, 실제 현실에서는 얼마나 광범위하게 그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인지하고 종합적 판단 하에 2심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부디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범한 우, 한국의 사법시스템에서 여성의 시민권을 훼손 및 누락시킨 전처를 밟지 말고 올바른 판결 내릴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1] 최경준, “안희정 새벽 페북 사죄 “도지사직 내려놓겠다””, 오마이뉴스, 2018.03.0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11043&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2] 문창석, “안측 “비난 가능해도 성폭력 아냐”vs 檢 “1심 본질 잘못 파악””, 뉴스1, 2018.12.21

http://news1.kr/articles/?3506915

[3] 이명화, 『남녀고용평등법상 성차별 구제에 관한 최근 미국 판례의 시사점』,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 80-81p

텍스트 구매처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7295358

[4] 셰도우 핀즈, “전직 충남도지사 강제추행등 사건 제5회 공판기일 모니터링+관련 발언”, (2018.8.29)

http://shadowpins.dothome.co.kr/?p=828

[5] 셰도우 핀즈, “공개 질의서 경과 공표 (1차)”, (2018.9.23)

http://shadowpins.dothome.co.kr/?p=880

[6] (사)한국여성변호사회,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마련』, 21p

http://www.kwla.or.kr/sub0402/1657

[7] 권준영, “‘안희정 무죄 판결’ 재판부, 김지은 그루밍 상태 인정 NO…그루밍 뜻은?”, 『서울경제』, 2018.08.20

https://www.sedaily.com/News/NewsView/NewsPrint?Nid=1S3FMOL4DS

[8] 셰도우 핀즈, “전직 충남도지사 강제추행등 사건 제5회 공판기일 모니터링+관련 발언”, (2018.8.29)

http://shadowpins.dothome.co.kr/?p=828

[9] (사)한국여성변호사회,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마련』, 81~82p

http://www.kwla.or.kr/sub0402/1657